걷기의 즐거움
걷기는 내가 아는 가장 값싼 여행이다. 신발 한 켤레와 한 시간이면 충분하고,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릴 때 걷는 것은 어딘가로 가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언젠가부터 걷는 일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아마 몸이 종일 의자에 붙어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저녁에 집을 나서서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면, 머릿속에서 종일 엉켜 있던 생각이 걸음의 박자에 맞춰 조금씩 풀린다.
목적 없이 걷기
운동으로서의 걷기와 산책으로서의 걷기는 다르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 경계를 굳이 나누지 않는다. 빨리 걷다가 천천히 걷고, 멈춰 서서 간판을 읽고, 다시 걷는다. 걸음 수를 세는 기계를 차 본 적도 있는데, 숫자를 채우려는 마음이 생기자 걷기가 일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시간만 정한다. 삼십 분이면 삼십 분, 그 안에서는 어디를 어떻게 걷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렇게 걸으면 신기하게도 매번 조금 다른 길로 가게 된다.
걷기에 대해 내가 배운 가장 쓸모 있는 사실은, 걷기 싫은 날일수록 현관까지만 가면 된다는 것이다. 신발을 신고 문을 열면 몸은 대개 그다음을 알아서 한다. 첫 오 분은 늘 어색하고, 십 분이 지나면 어깨가 내려가고, 이십 분쯤 되면 왜 나오기 싫었는지 잊는다.
얼마나, 어떻게 걸을까
그래도 기준은 있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세계보건기구는 성인에게 일주일에 백오십 분 이상의 중강도 신체활동을 권한다. 조금 빠르게 걷는 것은 대표적인 중강도 활동이니, 하루에 삼십 분씩 닷새를 걸으면 그 기준에 닿는다. 한 번에 채우지 않아도 된다. 십 분씩 세 번으로 나누어도 몸은 그 움직임을 기억한다. 계단을 오르거나 한 정거장 먼저 내려서 걷는 것도 모두 그 시간에 들어간다.
빠르기를 가늠하는 데는 말하기 시험이라고 불리는 오래된 방법이 있다. 걷는 동안 말을 얼마나 편하게 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 걷는 동안 | 세기 | 이럴 때 |
|---|---|---|
| 노래를 부를 수 있다 | 가볍다 | 몸을 풀거나 마무리할 때 |
| 대화는 되지만 노래는 어렵다 | 중간이다 | 권장 기준을 채우려는 대부분의 걷기 |
| 몇 마디 이상 잇기 어렵다 | 세다 | 짧게, 컨디션이 좋은 날에만 |
숨이 살짝 가빠지되 옆 사람과 대화가 이어지는 정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무릎이나 발목이 불편한 날에는 속도를 줄이고, 통증이 이어진다면 걷기를 쉬고 전문가에게 묻는 편이 낫다. 신발은 발보다 조금 여유가 있고 밑창이 너무 딱딱하지 않은 것이면 대개 무난하다.
걷는 동안 보이는 것들
걷기의 즐거움은 결국 보는 즐거움이다. 차를 타고 지나칠 때는 없던 것들이 걸을 때는 있다. 계절마다 바뀌는 가로수의 색, 늘 같은 시간에 문을 여는 가게, 어제는 없던 공사장의 울타리. 이런 것을 알아차리는 동안 마음은 지금 여기에 머문다. 걱정은 대개 과거나 미래에 있으니, 걷는 삼십 분은 걱정이 잠시 들어올 자리가 없는 시간이 된다.
혼자 걷는 날과 함께 걷는 날은 또 다르다. 혼자 걸을 때는 생각이 정리되고, 누군가와 나란히 걸을 때는 마주 앉아서는 못 하던 말이 나온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는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의 빈틈이 어색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오늘 저녁, 갈 곳이 없어도 신발을 신어 보기를 권한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걷는 일이야말로, 어른이 된 뒤에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즐거움이니까.